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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주일학교와 기독교 대안학교의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교육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 1

통합적인 교육을 위해서 전제되어야 하고 고려되어야 하는 대원칙

교회 주일학교와 기독교 대안학교는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교육을 위해서 무엇을 고려해서 구체적인 전략들을 세워야 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들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은 자연스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교육은 교육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전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교육 대상자인 학생들의 평생의 그림 속에서 교회 주일학교와 기독교 대안학교는 어떤 책임과 역할 인식을 통해서 학생들을 교육하고 구체적으로 교육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거시적인 측면과 미시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1. 거시적인 측면

거시적인 측면을 위해서 그리스도인 인생에 있어서 교회 주일학교와 기독교 대안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교회 주일학교와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모든 것을 다 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해 주어야 학생들이 성경적인 세계관에 기초한 교육에 의해서 그들의 인생의 큰 목표를 그리고 교회 주일학교와 기독교 대안학교를 통해서 교육 받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냐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앞의 글에서 논의를 했지만, 교회 주일학교와 기독교 대안학교는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된 다. 교회 주일학교와 기독교 대안학교가 세워지는 것은 세워졌기 때문에 단순하게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큰 목적 속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그 큰 목표는 교육 커리큘럼에 반영되어야 한다.

앞에서 논의를 했지만 교회 주일학교와 기독교 대안학교가 단순하게 한 부분만 교육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고, 교회 주일학교와 기독교 대안학교가 세워진 목표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다.

학생들이 성경적인 세계관의 큰 틀과 그림은 다 알지 못하더라도 교육의 주체들은 알고 학생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세계관과 학생들이 교육의 주체들에 의해서 꼭 인도되어야 하는 목표와 그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가장 먼저, 공교육의 대안으로서, 내지는 세상의 대안으로서라는 인식 보다는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전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큰 틀을 교회 주일학교와 기독교 대안학교가 가지고 지도하느냐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다음과 같다.

출생해서 신앙과 성경적인 세계관을 배우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그리고 전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목적에 인생을 귀속시키는 것을 배운다. 그 과정에서 교회 주일학교와 기독교 대안학교는 대단히 중요성을 갖는다. 우리는 흔히 아이들과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느냐,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느냐는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교육의 방향과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경적인 세계관에 입각한 큰 그림이 없거나 학생들의 니드만 생각하다가 벌어지는 현상이다. 또는 큰 그림은 있는데, 그것을 세부적으로 전략을 세우지 못해서 실패하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큰 그림과 세부적인 전략은 서로 통합되어서 적절하게 균형과 조화와 질서를 통해서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끼워나가는 긴밀함이 필요하다. 그것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출생: 믿는 가정에서는 태교가 중요하다. 태교에서부터 기독교 교육은 시작된다. 엄마와 아빠의 사랑은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고, 평안한 가운데 아이의 정서를 안정되게 한다. 그리고 엄마가 아이에게 사랑스런 말과 찬양을 통해서 아이가 어려서부터 기독교적인 정서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가정에서 사랑과 돌봄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되고, 부모들이 아이에게 건너는 사랑의 언어와 따뜻함을 통해서 아이는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자라나게 된다. 그리고 아이에 맞게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은 믿음에 더욱 친숙해 지도록 할 것이다.

2) 교육: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성경적인 세계관을 알도록 하는 것은 아이가 평생을 살아갈 관점과 체계를 형성해 주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는 자신이 직접 어떤 것을 창출하기보다는 부모나 TV, 또래 아이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좋은 모델이 되고, 좋은 교육자로서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가정의 분위가 자체는 아이가 경험하는 작은 사회 구조이기 때문에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형동생의 관계, 남자와 여자의 관계, 그리고 자신의 역할 모델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 구조 자체를 성경과 성경적인 세계관인 구조가 되도록 부모가 지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가족들도 동일하게 그런 의식 속에서 아이에게 모범이 되도록 해야 한다. 신앙적 부모와 신앙적인 가정 속에서 신앙적인 아이로 성장하는 것은 훨씬 용이하다.

3) 선교원: 선교원은 보통 5-7살 까지 교육을 하는데, 아이들의 지성과 정서, 그리고 의지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교육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과 교육의 목적에 중심을 두어서 백지와 같은 아이들에게 성경적 세계관을 통해서 아이의 마음판을 성경과 신앙으로 잘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선교원 아이들은 대부분 믿는 부모와 믿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좋은 친구와 주님 나라의 동역자로 계속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좋은 관계를 맺어주고, 또한 그런 관계가 이어지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4) 주일학교/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대부분 믿지 않는 아이들과 혼합되게 된다. 그리고 학교에서 믿지 않는 교사들에 의해서 교육되어지고, 방과후 수업이나 학원에서 믿지 않는 교사들에 의해서 교육을 받으면서, 많은 신앙적인 혼동이 일어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이나 주일학교(유초등부, 중고등부) 교사들은 이점을 생각하고, 학교생활과 학원생활을 어떻게하면 어려서부터 교육받은 성경적인 세계관을 유지하도록 할 것인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요즈음은 대부분 성적 중심의 교육, 성적 중심의 학원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것에 편승되지 않되, 너무 뒤떨어지는 것은 나중에 아이들이 실질적으로 대학진학이나 직업, 사회생활의 적응과 활동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신앙교육과 사회 속에서 적응하고 리드 할 수 있는 소명으로 교육에 임하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시기에 기독교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적중심으로 생각하면 이것은 덜 중요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때 성경적인 세계관에 의해서 교육과 학문을 잘 정립해 놓으면 아이들이 평생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통해서 대학진학을 결정하고 직업과 사회생활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학교 분위기가 세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무방비적으로 노출되거나,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을 잃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대안학교는 굉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독교 대안학교는 성경적인 세계관, 그리고 아이들의 대학진학, 진로, 직업선택과 사회 생활을 고려해서 이 시기에 기독교적인 정체성과 소명, 소양, 실력들을 빈틈없이 준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일반 학교와 짧고 교사들의 수급이 어려운 대안학교는 그렇기 때문에 교회와 부모들의 신앙의식이 필요하고, 또한 정상적인 교육과 다양한 교육과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잘 갖추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것은 좀 더 외연을 확장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많은 크리스쳔들과 교회, 그리고 기독교 단체들을 통해서 협력해서 한다면 보다 낳은 질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5) 대학교: 대학은 인본주의와 세속주의적인 학문의 요람이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전 학문을 통합한 학교가 있으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형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등학교까지에서 많은 기독교적인 준비를 학생들에게 시켜 놓지 않으면 학생들은 많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거대한 충돌이 일어나는 부분이다. 그리고 대학교 때는 그동안 입시 위주나 일방적인 교육에 의해서 길들여진 학생들이 세상의 교육적인 권위자들의 권위를 수용하고 따르기가 쉽다. 고등학교 까지는 교육 커리큘럼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인문학이나 사회학, 자연과학, 공학, 의학, 경영학등 세상의 구조와 체계에 필요한 것을 공부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호기심과 보다 심도 깊은 학문에 들어서고, 이것은 인생관과 세계관, 사회관, 직업관등 실질적으로 인생에 필요한 것들이 다루어지기 때문에, 성경적인 세계관이 빈약한 학생들이나 신앙이 약하거나 분별력이 없는 학생들은 대부분 분별없이 수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라는 12년 간의 기간을 통해서, 그리고 가정에서의 교육을 통해서 성경적인 세계관을 분명하게 정립하고, 교회 대학분에서는 실질적으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심도 깊은 성경적인 세계관을 정립하고, 신앙과 소명으로 성경적인 세계관을 견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회에서 성경적인 세계관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6) 직장과 가정을 이룸: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과 결혼과 가정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성인으로서의 독립성을 갖춘다. 이미 성경적인 세계관을 배운 사람은 그 틀과 내용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하고 가정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직장을 선택하는 것은 최대한 기독교 직장을 선택하면 일관된 신앙으로 인생을 꾸려 나갈 수 있다. 그것이 불가하다면 신앙적인 소신과 신념, 그리고 자신이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이것이 안 되면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옷처럼 수많은 신앙의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신앙의 우선순위에 의해서 직장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7) 직장의 승진과 자녀들의 출생: 직장의 승진은 신앙에 있어서는 하나의 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은 사회 속에서 책임과 역할이 늘어나는 만큼 영적인 것이 뒷받침되지 못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에서의 책임의 증가는 역으로 영적인 생활에서 많은 누수가 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를 잘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어려서부터 미리 인지시키고, 그것을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출생과 양육은 부모들의 책임과 역할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이때 영적인 우선순위, 그리고 교회와 가정과 직장에서의 시간배분을 잘 하도록 부부가 협력하고,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연합해서 대처해 가도록 해야 한다.

8) 중년과 노년: 중년은 인생에 있어서 꽃과 같은 시기이다.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이 커지고, 가장 의미있는 일들을 할 수 있는 노련한 시기이다. 그러나 체력적인 감퇴와 여러 가지 책임과 역할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가정에서 서로가 협력해서 지혜롭게 대처해 가야한다. ‘중년의 위기’라는 말이 많이 있는데, 이것을 대처하기 위해서는 중년에 비로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교시절부터 얼마나 균형과 조화와 질서를 통해서, 우선순위가 정립된 가운데 꾸준하게 준비해 왔는가에 따라서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건설되지 않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중년의 황금기도 어려서부터, 청소년기와 청년의 시기에 잘 준비된 만큼 아름답게 꽃 피울 수 있다.

9) 죽음: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절정은 사실은 죽음이다. 한 사람이 출생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주님의 통치를 받으며 인생을 살며, 자신은 물론 주님의 교회와 이웃과 지역, 그리고 민족과 세계의 일원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헌신된 인생의 최종역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무덤을 생각하게 하지만, 육체는 무덤에 있어도 영혼은 하나님 앞에 올라 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곧 영광에로의 진입이다. 죽음 앞에서 인생을 회고해 볼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인생이었다면 최고의 인생일 것이다.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천하를 얻고 자신의 목숨을 잃는 것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복이 있는 것이다. 비록 천하는 얻지 못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별과 같이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은 세상이라는 구조와 환경 속에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의 인생을 개략적으로 살펴 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교회 속에서의 성장과 봉사에의 성장이다.

10) 교회 속에서 성장과 봉사에의 성장: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것은 교회의 봉사는 청년의 몫이 되어 있거나, 직장을 갖지 않은 여전도회의 몫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한국 교회의 초기부터 이어져오는 일관된 추세이다.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결혼을 하고 남전도회가 이런 영적 봉사와 부흥의 주체가 되어지는 것은 힘든 것인가? 이것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요즈음은 맞벌이 부부가 많기 때문에 이런 추세는 더욱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아이들을 공동으로 돌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교회에 있는 시간, 교회에 봉사하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 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서는 저녁에 아예 쉼터를 만들어서 교회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 놨고, 연구실, 영어 도서관, 작은 도서관, 북카페, 문화 교실(준비)을 만들어서 가정에서의 시간을 조금 더 교회 속에서 함께 함으로 영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영적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절약하고, 모일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고 섬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놨는데, 물론 이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니라면 이 바쁜 현대와 복잡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영적인 것들의 심도 깊은 성장을 기대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나 하나님 나라의 일들에 있어서 성장과 심화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며 고육지책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프레임과 구조를 통해서 지역주민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

교회가 세상 교육의 언저리, 내지는 뒷북을 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주체로 당당히 서고, 세상과 사람들에게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삶, 그리고 기독교적인 대안을 제시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지역주님들과 영혼들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교회 예배와 문화에 참여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주님의 뜻을 실천하고 주님의 목적에 근접하고자 하는 것인 동시에 영적인 것이 후퇴하지 않도록 하는 고육지책도 물론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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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2 20:46